봉이 김선달 탐욕의 기득권 조롱
[136] 봉이 김선달 탐욕의 기득권 조롱 조선후기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서민의식 반영
대동강 물을 판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는 지금도 터무니없는 사기꾼에 비유해 인용하기는 한다. 때로는 탐욕스러운 기득권을 조롱하는 저항의 아이콘으로도 나타난다. 조선은 영정조 중흥 정비기를 거치면서 농업 생산력 향상, 조세 전세화, 금납화가 이루어졌다. 늘어나는 농업생산력은 농민 계층의 분화를 촉진하고, 농지를 갖지 못한 농촌 인구는 도시로 유입되며, 대부분이 임금 노동자로 도시 빈민이 된다.
영화 '봉이선달'의 한 장면1) 김선달, 차별받은 서북인 정서 대변자 ①봉이, 김선달 설화는 이 시기 평안도를 무대로 신흥 거부, 허울 좋은 양반, 위선적인 종교인 등을 상대로 봉이 김선달이라는 주인공이 벌이는 일종의 사기극이다. 사기극이지만 사기를 당하는 상대가 주로 지배계층이라 서민들은 이야기에서 통쾌함을 느낀다.②대동강물 사건은 소외됐던 서북인들의 정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로 평양 주민들이 모두 한마음이 돼 흔히 서울 마을 사람들을 좀먹는 이야기다. 평양감사도 싫으면 그만이라는 속담은 평양이 탐관오리의 수탈을 상대적으로 당했다는 뜻도 담고 있다.③돈이 돌지만 정치에는 소외된 한량이 생기는 일이라고는 유흥밖에 없었다. 평양은 색향이라는 말 속에는 거꾸로 당시 사회에서 경쟁에서 뒤처진 소외층이 결국 홀대받는 업종에 종사했다는 사회상을 투영했음을 알 수 있다.조선 후기에 들어 평안도는 대청무역(만산 등)이나 금광업(홍경래가 이를 빌미로 봉기)으로 부자가 된 상인이 많았다. 먹을 것이 있으면 이를 노리는 투기꾼과 건달도 있기 마련이고, 아마도 김선달의 사기는 이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을 윤색한 것일 게다.
2) 전국적으로 비슷한 유형 일화가 전해지며 ①봉이 김선달식 설화는 전국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여름방학 중 정만서, 정수동 등 지역은 다르지만 비슷한 일화가 있는 것은 조선 후기 장시의 발달로 지역 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이러한 일화가 퍼졌다는 해석도 있다.②민간 전승의 김성달 설화가 문헌에 처음 나타난 것은 황성신문(1906년)이다. 신문 연재한 한문 현토소설 '신단면안' 중 네 번째 이야기 '인홍변서봉낭사 승명관(인홍이 봉으로 변하고 낭사가 관리를 이긴다)'이다. 한문 현토소설은 개화기에 나타난 문학 형태 중 하나로 한문에 한글로 '트'를 붙이는 것(선달들이 시장을 둘러보면 등등 소설에서 김선달은 평양 출신의 선비 김인홍이고 호는 낭사이며 큰 뜻을 품고 한양에 상경했으나 대단한 문벌과 서북인을 차별하는 풍조에 멸시당할 뿐이다. 김선달은 권세가와 부유한 상인들을 골탕먹이고 그들의 위선을 폭로하며 세상을 비웃는다.
영화 '봉이 김선달' 감독 박대민, 2015년 개봉전국적으로 비슷한 유형의 일화가 전해지고 있는 봉이라는 성호는 시장에서 닭을 상대로 한 번도 닭을 본 적이 없는 시골 사람처럼 연기해 닭을 봉황이라고 속여 팔도록 한 데서 유래했다. 닭장수가 김선달에게 비싼 값에 닭을 봉황으로 속여 팔고 있는데 시골뜨기로 위장한 김선달은 이 닭을 평양감사로 진상한다. 닭을 봉황으로 속여 팔아먹은 닭장수가 데려와 김선달은 자신이 낸 닭값의 10배 이상을 대신 받는다. 이때부터 김성달의 성호는 봉이가 된다.②원래 선달은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벼슬을 갖지 못한 사람의 호칭이다. 조선 후기 권세 정권의 매관매직으로 과거에는 합격하고도 실제 직책을 맡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③김선달의 과거급제는 무과시험 중 경전을 암송하는 시험에 말라리아에 걸린 것처럼 한여름에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나타난 데서 시작된다. 감염이 무서운 시험관이 김선달을 접근시키지 못하게 하자 김선달은 멀리서 경전을 암송하는 시늉만 내며 합격한다.
영화 '봉이 김선달'에서 대동강물을 팔아먹는 장면.④대동강 물을 판 사건은 한양의 욕심쟁이 장사꾼을 상대로 한 사기극이다. 김선달은 대동강에서 물을 긷는 평양의 물장사들에게 미리 엽전 두 냥을 돌린 뒤 물을 길 때마다 자신에게 한 냥을 돌려줄 것을 당부한다. 한양 부자들은 물장사에 인기 있는 김선달을 보고 심술을 부려 김선달에게 대동강을 3000냥에 산다.비슷한 유형으로는 대동강 오리 팔아먹은 사건, 겨울 언 호수에 짚단을 말아 논바닥처럼 만들어 팔아먹은 사건이 있다.물오리 사기는 임진왜란 당시 김시민 휘하의 군관 정평구 설화와도 비슷하다. 정평구가 젊은 시절 김제군 부량면의 오리떼를 팔았다는 이야기가 있다.김선달 설화는 무능한 선비와 욕심 많은 부자를 괴롭히는 이야기가 많다. 신문명의 유입, 신분제의 붕괴 속에서도 체면 유지를 중시하는 기득권에 대한 서민의 분노가 투영됐을 것이다.


